헤세드의 봄소식을 가득 담아 전합니다.
벚꽃이 터널을 이루고, 노란 유채꽃과 보라색 갯무꽃이 가득한 제주의 봄은 처음 누려봅니다.
작년 가을부터 피어난 동백은 4월까지 아름답습니다.
벚꽃이 가득한 제주대 앞길, 삼성혈, 신산공원을 둘러보았습니다. 벚꽃과 유채가 함께 핀 가시리의 절경도 보고 깡통기차를 타고 유채꽃밭을 누비기도 했습니다.
그 유명한 제주 고사리도 꺾어 보았습니다. 두껍고 큼직한 고사리를 발견할 때마다 보물을 찾은 기분입니다.
헤세드 아버지의 뜰에도 귤꽃이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귤농사 스승님의 과원 ‘실결원’에는 레몬 꽃도 활짝 피었습니다. 귤 가지를 자르면 귤 향기가 나듯, 레몬 나뭇가지를 자르면 레몬 향기가 가득합니다. 이 당연한 사실이 얼마나 신기한지요.




과일의 맛이 예전만 못함을 자주 느낍니다. 나무들이 어쩔 수 없이 자신들과 맞지 않는 장소에서 자라며 그 환경에서 억지로 과일을 만들도록 강요당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무들을 화학 약품으로 끊임없이 살균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잘못된 일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나무가 엄연히 살아 있는 존재이며, 인간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책,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에서
헤세드, 아버지의 뜰(헤아뜰) 소식
귤나무를 하루에 6~8시간 바라보며 꽃이 올 자리, 순이 올 자리, 과경지(작년에 귤이 달린 가지), 도장지 등을 구분해 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불필요한 가지를 제거해서 빛이 모든 가지에 잘 닿게, 통풍이 잘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방제를 해 보니, 모든 잎과 순에 색칠하듯이 약을 입혀야 하는데 전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합니다. 잘못 자른 가지는 다시 붙일 수 없고 꽃이 올 가지를 자르면 올해 열매를 얻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라 서로 말을 하거나 음악을 듣지 못할 정도로 집중했습니다. 스승님이 먼저 시범을 보여주시며 설명과 질문의 시간을 갖고 각자 한 나무씩 맡아서 전정하고 다 같이 모여 점검받는 식으로 배웠습니다. 몇 시간씩 나무 앞에 서서 가위질을 하다 보면 완전히 녹초가 되어 집에 옵니다. 봄전정이 다 끝났는데 아직도 오른손이 저립니다. 여름전정과 가을 전정을 위해 아귀힘을 기르려고 손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서귀포 농업기술센터 최 과장님은 올해 작황이 가장 안 좋을 것 같다고 걱정스러운 말을 하셨습니다. 최 과장님은 작년 6월에 친환경감귤연구회 교육 때 처음 만났는데, 귤과 만감류 모든 농사에 대해 엄청난 전문가이십니다. 직접 농사 지으시는 과원에 가보니 나무에 그림같이 귤이 달려있어서 정말 놀랐습니다.
이런 전문가가 작년 가을에 기온이 높았다가 갑자기 낮아져서 올해 귤꽃이 많이 피지 않을 것이라 합니다. 3년째 제주 친환경 감귤 농부들은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올해는 더 나쁠 것이라고 하시니 어떻게 다른 대책을 세워야 하나 고민이 깊습니다.
“지켜야 할 마음이 있습니다.” 김지수 작가님의 시 에세이 책 제목입니다.
제주친환경감귤연구회 농부들의 삶이 이 문장과 이어있습니다. 돈을 생각하면 친환경 농사를 지속할 수 없습니다. 기후 위기 시대에 계속 연구하고 연대해서 땅을 살리고, 나무를 살리고 좋은 먹거리로 인간을 살리는 길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함께 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작은 귤나무에 꽃봉오리가 가득 달려 있는 모습이 감동입니다. 4월 27일 주일, 헤아뜰에서 첫 귤꽃이 피었습니다. 얼마나 기다리던 꽃이 던지요. 이 꽃들 중 5% 정도만 남아 열매가 된다고 합니다.


귤나무 프로젝트
2025년 헤세드 귤나무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작년 프로젝트에 참여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제주에 정착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올해는 헤아뜰에 있는 귤나무를 분양합니다.
저희가 무농약으로 퇴비부터 비료, 전정, 방제, 수확까지 직접 농사지어 보내드립니다. 헤세드 공동체가 친환경 귤농사를 잘 배워서 다음 세대에게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관계를 실천적으로 가르칠 수 있도록 이번에도 힘을 보태주세요.
작년과 동일한 가격으로 귤나무를 분양합니다. 한 그루에 10만 원이고, 한 그루 당 총 20kg의 귤을 12월까지 보내드리겠습니다.
풋귤청 담그실 분, 9월 초에 배송 가능합니다. 노란 귤은 11월~12월에 배송될 예정입니다. 프로젝트 신청하신 분들께 기간에 맞추어 다시 주소와 수량 조사하겠습니다.
2025년 헤세드 귤나무 프로젝트 신청서 링크
https://forms.gle/21CqDNFbNYUhuq389
헤세드 북클럽
작년 7월부터 시작한 헤세드 북클럽은 형님반으로 계속 진행하고, 초등 4학년부터 참여하는 아우반을 더 개설하기로 했습니다. 해외 선교사 자녀들도 연결되어 수업에 참여하기로 했고 새로 신청한 학생들이 있어서 클래스를 더 만들기로 했습니다. 아직 몇 자리 남아있으니 참여를 원하시는 학부모님은 연락 주세요.
신청 링크
https://forms.gle/zKQ3mGdLa1i8YWv76
형님반은 박완서 선생님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어려운 단어가 많아서 쉽지 않은 책인데 함께 읽으니 완독 할 수 있습니다. 문해력이 일취월장하는 학생들을 보는 것은 큰 보람입니다.
형님반 학생들과 함께 만든 책, ‘헤세드 북클럽 시즌 1’은 온라인 교보문고에서 주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6168964
슬픔에 대한 공부
제주 출신 지인은 봄에 꽃구경은 할 마음이 없다고 하십니다.
4월 즈음이 되면 다같이 우울해진다고.
어릴 때 뛰어 놀던 바닷가에 왜 어른들은 오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게 된 날에 대해 말해주셨을 때, 팔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 바닷가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시신을 가져가지도 못하게 했던 장소였다고, 그 시대를 살아내신 어른들은 그 바다를 볼 때마다 마음이 어땠을까요.
친척 중에 4.3 유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되셨다고 합니다.
어떻게 유가족이 되셨는지도. 여전히 말하기 어려운 그 시절의 이야기 한 편을 보았습니다.

7년 7개월이라는 긴 시간동안 3만여명이 학살을 당했습니다.
그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갇혀 남은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영상 속 할머니들의 침묵과 떨림은 그들의 고통이 여전히 진행중임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채 규정되는 모든 존재들은 억울하다.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중에서.
이 억울함이 벌써 폭력의 결과다.
‘폭력’의 외연은 가급적 넓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이런 정의를 시도해본다.
‘폭력이란? 어떤 사람/사건의 진실에 최대한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는데서 만족을 얻는 모든 태도.’
폭력에 대한 감수성에 민감해지는 것이 두렵기는 합니다. 제주의 어두움을 조금씩 직면할 때마다 마음이 참 아픕니다. 그 어두움에서 지금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슬픔에 대한 공부를 미룰 수 없겠습니다.
농부 철학자 책에서 ‘나무는 하늘을 향해 일어서는 대지의 일부분’이라는 말이 참 좋습니다. 나무를 키우고 가꾸는 일을 처음 해 보는데 학생을 가르치는 일과 일맥상통합니다. 한 밭에 같은 시기에 심긴 같은 품종의 나무지만 각 나무마다 생장속도와 상황이 다 다릅니다.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개성 강한 학생들처럼요. 꽃이 가득 온 나무가 있고, 순이 가득한 나무도 있습니다. 크게 자라는 나무가 있고 유난히 작은 나무도 있습니다.
나무마다 꼭 필요한 것을 시기적절하게 공급할 수 있는 좋은 농부가 되고 싶습니다. 우리 학생들에게 자연에서 배운 귀한 가치들을 잘 전달하는 교사가 될 수 있도록 기도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더 많은 농사일기는 블로그에서, 실감 나는 헤세드 공동체의 일상은 팟캐스트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